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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흥동

2013년 9월 23일 여주군이 여주시로 승격되면서 기존의 여주읍은 폐지되고 여흥동, 중앙동, 오학동 3개의 행정동이 신설되었다. 여흥동은 행정동으로, 법정동인 상동(上洞)·홍문동(弘門洞)·상거동(上巨洞)·하거동(下巨洞)·삼교동(三橋洞)·점봉동(店峯洞)·능현동(陵峴洞)·멱곡동(覓谷洞)·우만동(又晩洞)·단현동(丹峴洞)·신진동(新津洞)·연양동(淵陽洞)·매룡동(梅龍洞)을 관할한다. 여주읍일 때는 상리, 홍문리, 상거리, 하거리, 삼교리, 점봉리, 능현리, 멱곡리, 우만리, 단현리, 신진리, 연양리, 매룡리의 법정리를 관할했는데, 여주시로 승격되면서 각 리의 명칭이 상동, 홍문동, 상거동, 하거동, 삼교동, 점봉동, 능현동, 멱곡동, 우만동, 단현동, 신진동, 연양동, 매룡동으로 변경되었다. 여흥동에 여주시청이 있다.

예전 여주읍은 여주군청의 소재지로 여주읍내가 되어 주내면(州內面)이라 하였다. 양촌(陽村), 연촌(淵村), 매야(梅也), 용경(龍耕), 상동(上洞), 신대(新垈), 홍문(弘門), 도장(道壯), 창동(倉洞), 하동(下洞), 석숙(昔宿), 교동(校洞), 가업(稼業), 월송(月松), 삼전(三田)의 15개 마을을 관할하였다. 1914년 3월 1일 행정구역 개편 때 근동면(近東面)의 신진(新津), 초현(草峴), 능촌(陵村), 점촌(店村), 침봉(針峯), 멱곡(覓谷), 우만(牛灣), 상대거(上大巨), 하대거(下大巨), 삼대(三臺), 우교(牛橋), 단강(丹江), 오현(烏峴)의 13개 마을과 수계면(首界面)의 연라동(烟羅洞)을 병합하여 연양, 매룡, 상리, 홍문, 창리, 하리, 교리, 월송, 가업, 신진, 능현, 점봉, 멱곡, 우만, 상거, 하거, 삼교, 단현, 연라의 19개리로 개편 여주군 주내면(州內面)으로 개칭하면서 군청소재지를 창리(倉里)에 두었다. 1938년 주내면이 여주면으로 바뀐 후 1941년 10월 1일 면에서 읍으로 승격하였으며, 2013년 9월 23일 여주시로 승격되면서 여흥동, 중앙동, 오학동으로 분리되었다..

여흥·중앙·오학동 동쪽은 강천면, 서쪽은 능서면, 남쪽은 점동면, 북쪽은 남한강(여강)을 사이에 두고 북내면과 접하고 있다. 여흥·중앙·오학동은 여주지방의 중심도시로 옛날에는 수운의 중심지였고, 수려선(水驪線) 철도의 시발지였다. 육상교통의 발달과 영동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1972년 수려선은 폐철되었다. 여흥·중앙·오학동에서 42호 국도가 수원과 원주를 동에서 서로 시내를 관통하고 장호원과 양평을 잇는 37호 국도가 남과 북으로 여주읍을 지나며 영동고속도로가 여주읍 중앙으로 이어지고 있어 사통팔달 교통이 편리한 곳이다. 여기에 수려한 경관으로 하여 시인, 묵객의 시어(詩語)가 풍미한 곳이니 『여강시축(驪江詩軸)』이 이를 대변하고 있다. 송강 정철(鄭澈)의 관동별곡(關東別曲)중 “평구역 말을 갈아 흑수(黑水)로 도라드니 섬강이 어디메오 치악이 여기로다”로 표현되었던 흑수는 곧 여강(驪江)이니 여주읍을 말하는 것이고 섬강과 달천이 합수하여 삼합리(三合里)가된 곳이 여주의 상징적 형승(形勝)이다.

여주는 『택리지』에서도 대동강 언저리 평양과, 소양강 언저리의 춘천과 함께 여주를 우리나라 안에서 가장 살기 좋은 강촌으로 꼽고 있다. 택리지에 “여주에는 사대부(士大夫)의 집이 많아서 대를 이어서 산다”고 기록되어 있듯이 벼슬길을 기다리는 양반들과 관직에서 물러난 사대부들이 대대로 살았다. 여흥 민씨, 안동 김씨, 원주 원씨, 천령 홍씨, 여주 윤씨가 대표적인 문중들이다. 고려시대 순경왕후 김씨, 조선시대 원경왕후 민씨, 인현왕후, 명성황후 등 4명의 왕비가 이곳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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