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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3·1운동 항쟁기간이었던 1919년 4월 1일 3,000여 명이 금사면 이포리에서 이원기, 원필희의 지휘로 여주군청을 습격하였으며, 1919년 4월 17일에는 3,000여 명이 북내면 곡수리에서 만세를 부르다가 헌병이 발포하여 6명이 피살되었다.

북내면에서 약 300명이 집합하여 만세를 부르며 시위행진을 하였는데 헌병이 쫓아와서 실탄사격을 하여 3명의 사상자를 냈다. 여주군 전역의 각 면·동에서는 3월 11일부터 4월 15일까지 임순호(林淳豪)가 각처로 연락하여 마을단위로 산에 불을 놓고 만세를 부르며 시위하였다.

1919년 12월 28일 여주군 학생 97명을 모집하여 북내공립보통학교가 설립되었다. 1920년 3월 3일 조선경동철도(朝鮮京東鐵道)가 향산홍(香山弘) 외 15명의 자본금 500만 원으로 설립, 수원-여주 간 경사철도(輕使鐵道) 부설을 허가받았다.

1921년 6월 여주여자야학회가 설립되었고 1922년 4월 1일 여주군의 김익진(金翼鎭), 김기(金基)가 하자포학술강습회(河紫浦學術講習會)를 설립(학생 35명, 교원 2명)하였다. 1922년 7월 여주읍 신청년회(新靑年會)가 조직(회원 50명, 회장 : 전은하)되었으며, 1922년 10월 계원 90명이 자본금 1,000원을 마련하여 상동리 혼상계(上洞里婚喪栔)를 조직(계장 : 최성낙)하였다. 1922년 11월 학생 100명을 모집하여 가남공립보통학교가 설립되었고, 1923년 10월 주내면 홍문리 주민 80여 명이 자본금 500원을 모금하여 홍문리 친목조합(弘門里親睦組合)을 설립, 조합장에 박경보(朴京甫)가 취임하였다.

1924년 4월 1일 이건석(李建奭)이 학생 35명을 모집하여 효지학술강습회(孝池學術講習會)를 설립(회장 : 박노선)하였고, 1924년 4월 29일 점동공립보통학교가 설립(학생 97명, 교원 14명)되었다.

1924년 11월 1일 11명의 회원으로 형평사(衡平社) 여주지부(지부장 : 김상근)가 설립되었고, 1925년 4월 오현경(吳賢慶), 오선경(吳善慶)이 아동 25명을 모집하여 여주유치원을 설립(원장 : 현성원)하였다. 1925년 10월 12일 금작조합에서 면화공동 판매를 시작하였으나, 1등품 1근에 18전으로 시장가격보다 12전이 낮아 공동판매를 거부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하였다. 1925년 12월 15일 금사면 이포청년회 주관으로 무산아동(無産兒童)을 위해 이포공립보통학교에 노동야학이 개설되었다. 1925년 12월 21일 이흥범(李興範), 겸경중(金敬中), 한흥수(韓興洙)가 흥천면 복장리에 복대야학(卜大夜學)을 창설(학생 : 40여 명, 학과목 : 한글, 산술, 일어)하였고, 1926년 1월 15일 여주읍에 금연계(禁煙契)가 설립(자본금 : 27원, 계장 : 석응합)되어 당시로서는 매우 이색적인 금연운동이 전개되기도 하였다. 1926년 6월 13일 흥천면 흥진소년회(興進少年會)가 창립되었고, 1926년 6월 28일 안성-장호원 간 여주선 기공식이 거행되어 협궤열차가 운행되는 계기가 되었다.

1926년 10월 15일 누구나회가 북내면 천송리에 조직(회원 : 21명, 회장 : 윤의병)되었고 1926년 10월 21일 여주노동친목회(驪州勞動親睦會)가 창립되었다. 1926년 12월 여주군 흥천면 복대리 유지 20여 명이 경영난에 빠진 복대야학에 50여 원을 전달하였고, 1927년 4월 1일 대신공립보통학교가 설립(학생 : 68명, 교원 : 2명)되었다.

1927년 5월 15일 농우회가 점동면 청안리에서 창립(회원 : 50명, 회장 : 유상기)되었고, 1927년 10월 15일 탁원배, 탁문배의 주선으로 북내면에 현암소년보통학교가 설립(학생 : 16명 당장 : 이영환)되었다. 1927년 10월 이재호(李在浩)가 여주군 점봉리에 야학회를 설립(학생 : 20명)하였고, 1927년 11월 신흥청년회(新興靑年會)가 여주군 북내면 단현리에 창립(회원 : 20명 회장 : 김상기)되었다. 1927년 11월 이재호가 여주군 주내면 능현리에 유치원을 설립(아동 15명)하였고, 1927년 12월 25일 기동보린사(畿東保隣社)가 여주군에 설립(자본금 : 26,000원, 사장 : 이민응)되었다.

1928년 1월 2일 주내면 우만리 농민들이 우강농민회(牛江農民會)를 조직하고 창립대회를 개최하였으나 여주경찰서에서 이유 없이 해산을 종용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1928년 1월 12일 주내면 우만리 우강농민회 제1회 집행위원회가 개최되어 회관 건립·신입회원 건, 의연금 모금 등을 토의하였다. 1928년 1월 31일 조병현(趙炳賢)이 여주군 신지리에 학술강습소를 설립(학생 : 60명)하였고, 1928년 3월 12일 여주군 내 각 단체 일원화를 목적으로 연맹조성회 구성 임시회의가 개최되었으며 연맹조직대회 개최를 결의하였다.

1928년 5월 29일 여주군 서면 수리조합 관계지주 300여 명이 지주총회를 개최하여 수리조합 설치반대 결의를 하고 당국에 진정서를 제출하였다. 1928년 5월 여주군 읍내 10인 친목조합이 설립(자본금 : 50원, 조합장 : 전은하)되었고, 1928년 8월 31일 북내면 당우리 공조회가 창립(회원 : 60명, 회장 : 조근수)되었다. 1928년 11월 28일 강천면 간매리 근농공제조합(勤農共濟組合)이 창립(회원 : 30명, 조합장 : 곽재룡)되었으며, 1928년 11월 28일 경기도 여주군 능서면 매화리 근농공제조합(勤農共濟組合)이 창립(회원 : 30명, 조합장 : 李漢龍)되었다.

1930년 3월 11일 여주군 노동자 40여 명이 여주노동친목조합(驪州勞動親睦組合)을 창립하고 총회를 개최하였으며, 같은 날 노동친목회가 조직되었다. 1930년 8월 1일 여주학우회에서 여름방학을 이용하여 여주노동야학을 개설하였고, 1932년 2월 이성출, 지옥성 등이 여주군 금사면에서 농민운동을 협의하였다. 1932년 3월 17일 한성은행 수원지점 여주출장소가 개업되었고, 1933년 1월 14일 여주군 주내면 홍문리 창리진흥회가 문맹퇴치를 목적으로 학생 200여 명을 모아 무료로 가르치는 등 교육열의 가속화가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1933년 2월 가남면 안금리 회장 임명재(任命宰) 발기로 농한기를 이용한 야학이 개최되었으며 1934년 8월 28일 여주군농회에서 지주회를 개최, 농지령 취지를 설명하기도 하였다.

1934년 11월 15일 여주 상리·창리 합동야학이 개설되었으며 1938년 5월 여주군 1,700여 명의 청년단원을 근로보대(勤勞報隊)로 조직 중앙선 공사에 출역시키는 등 일제강점기 노력동원의 실상을 보여주는 사건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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