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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삼국시대 경기도는 한강유역의 지리적 이점 때문에 삼국(고구려·백제·신라)이 각축을 벌였던 요지 중의 요지였다. 4세기 이후 5, 6세기에는 한강유역을 놓고 한반도에서의 주도권 쟁탈권이 벌어졌다. 여주지역은 이 시기에 삼국이 벌였던 쟁탈의 주요대상이었던 한강유역에 위치하였으므로 삼국의 주도권 변천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를 겪어야 했다. 앞에서 언급한 대신면 천서리의 파사성도 삼국쟁패기 한강유역의 요새였음은 주변의 산성분포로도 짐작되는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이미 발굴조사로도 밝혀졌지만 계속되는 한강유적의 발굴조사와 삼한시대 이래 삼국시대의 문화실상이 새롭게 제기되고 있다. 골내근정, 파사성은 삼국쟁패기 여주의 상징적인 관방유적으로 치부해도 무방할 것이다.

여기서 여주지역에 설치되었던 골내근정은 통일신라기 통치체제의 일환인 9주 5소경의 하나였던 오늘날의 경기도 일원의 한산주(漢山州)에 설치되었던 삼국통일기 신라 군사력의 응집력을 상징하는 6정(停)의 하나였다. 여주는 이러한 지방행정제도의 정비에 따라 경기도 일원이 한산주로 개편될 때 술천군의 영현으로 편입되었는데 고구려 때부터 사용되었던 골내근현이란 명칭이 경덕왕 때에는 황려현(黃驪縣)으로 개칭되었다. 통일신라기 지방제도와 아울러 군사제도도 백제·고구려 유민들을 흡수하면서 새롭게 정비되어갔는데 6정(六停)의 군사제도는 나당전쟁을 거치고 삼국통일을 이룩하는 동안에 기간 병력이 되어 후에 9서당(九誓幢)·10정(十停)·5주서(五州誓)·3변수(三邊守) 등으로 재편되면서 정비되었다.

중앙의 9서당에 대해서 지방에 배치된 가장 중요한 부대가 10정이었다. 10정은 제일 지역이 넓고 또 국방상의 요지인 한산주에 설치된 남천정(南川停 : 이천 지방)과 골내근정의 2개 정을 비롯하여 다른 8개의 주(州)에 1개의 정이 배치된 9주의 행정구획과 관련된 군관구(軍管區)적인 조직이었다. 여주에는 10정 중의 하나인 골내근정이 설치되었던 것으로 보아 여주가 한강 하류에서 경상도 지방을 연결하는 중요한 길목이라는 사실과 관련성이 있음을 보여주는 기록이다. 삼국시대 이래 지금도 한강 하류에서 경상도로 곧바로 연결되는 교통로는 이천을 거쳐 가는 길과 여주를 거쳐 가는 길이 충주로 이어져 이곳에서 죽령을 거쳐 경상도로 이어지게 된다. 이러한 점은 한산주(漢山州)에 설치된 정(停)이 여주와 이천지방에 각각 설치되었다는 점과 관련되어 삼국시대 지방행정구역의 위치를 상고하는데 지리(地理)는 바로 군사전략과 불가분의 상관관계를 갖고 있다는 역사의 기록으로 주목된다. 삼국시대 여주의 연혁은 남한강의 상류로서 수로로도 중요한 지점이었다는 사실이다. 앞에서도 언급한 대신면 천서리의 파사성과 아울러 능서면 신지리성이 북성산에 위치했는데 이러한 성지는 여주지역이 일찍부터 군사적인 요충지로 중요시되었다는 것을 방증해주는 자료일 뿐 아니라 통일신라기 설치되었던 골내근정이 지금도 여주의 중심부인 능서면 신지리(新池里)로 비정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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