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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로 보는 여주시사

역사적 위치

『삼국사기』 지리(地理)편에 보면 여주지역은 기천군으로 본시 고구려의 술천군으로 되어 있다. 신라의 경덕왕(景德王)이 기천(沂川)으로 개명하였다. 지금 천령군(川寧郡)이니 영현(領縣)이 둘이다. 황효현(黃驍縣)은 본시 고구려의 골내근현으로 경덕왕이 황효로 개명하였으니 지금의 황려현(黃驪縣)으로 기록되었다. 여주의 역사적 위치를 기록한 최초의 기록이다. 다음 『신증동국여지승람』 여주목(驪州牧)조에 보면 여주는 “본래 고구려의 골내근현이다. 신라 경덕왕이 황효로 고쳐 기천군의 속현(屬縣)으로 삼았다. 고려 초에 황려현, 황리(黃利)라고도 한다”고 나온다. 현종 때 원주에 부치고, 뒤에 감무(監務)를 두었고, 고종 때 영의(永義)로 고치고 충렬왕 31년에 순경왕후(順敬王后) 김씨의 고향이므로 여흥군으로 승격시켰다. 대명(大明) 홍무(洪武) 21년에 신우(辛禑)를 이 군에 옮기고 황려부로 승격시켰다가 공양왕 원년에 다시 내려 군으로 하였다. 조선시대 태종 때에는 원경왕후의 고향이므로 다시 승격하여 부(府)로 하고, 음죽현 북쪽 어서이촌(於西伊村)을 합하여 충청도로부터 경기도에 예속시켰다가 위에 고쳐 도호부(都護府)로 했다. 예종 원년에 영릉(英陵)을 부의 북성산(北城山)에 옮기고, 천령현(川寧縣)을 혁파하여 이 부에 소속시키고 지금 이름으로 고쳐 승격시켜 목(牧)으로 하였다. 군(郡)명칭도 시대에 따라 골내근, 황효, 영의, 황려, 여강, 여흥, 여성(驪城) 황리로 바뀌었음을 기록하고 있다. 『삼국사기』와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으로 볼 때 여주의 역사적 위치는 삼국 이래 현재에 이르기까지 거의 위치에 있어 큰 변화가 없는 지역임을 일깨워주고 있다. 서울 주변지역의 군에서 보듯 분가하여 독립된 자치행정의 주체로 관내 일부지역을 관할하는 행정단위로 변화되지 않은 지역임을 말해주고 있다. 현재의 여주 위치는 동쪽으로 강원도 원주시에 접해 있고 남쪽은 충청북도 충주시, 음성군 및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읍과 연접되어 있으며 서쪽은 경기도 이천시 신둔면, 백사면 광주시 실촌면과 맞닿아 있다. 북쪽은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지제면, 양동면과 접경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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