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강의 비상 여주시 여주시사

정부3.0

여주 도자기의 역사

여주도자기의 역사는 경기도박물관에서 2차에 거쳐 발굴조사한 중암리고려백자가마터를 통해 고려초부터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가마터는 용인 서리 가마터와 함께 우리나라 도자기 발생의 초기상황과 변천과정은 물론 초기 백자의 편년연구에 있어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조선시대때는『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도기소(陶器所) 하나가 여주 관청의 북쪽 관산(串山)에 있다’라고 기록되어있을 만큼 여주지역은 도자사적으로 중요한 곳이었다.

1884년에 광주분원이 없어지자 김현채를 비롯한 몇사람의 도공이 여주에 정착해 요강과 막사발을 제작, 전국으로 보급했다.

1932년 조선총독부 중앙시험소의 보고서에 따르면 여주시험 소의 직원으로 이임준 기술과장, 한호석 서무과장과 직원으로 지순택, 고명순등이 있었고 조각사로 해강 유근형이 근무했었다고 한다. 이것으로 미루어 유근형, 지순택씨등이 여주에서 젊은시절 도예를 배웠음을 알 수 있다.

일제강점기의 열악한 상황하에서도 도자기의 전통은 면면히 이어져 1950년 5개의 생활도자기 공장이 새로 설립되었고 1960년 후반에는 도자기 산업의 호황으로 많은 공장이 설립, 운영되었으며 1970년에는 40개소, 1980년에는 100개소 등이 늘어나 현재는 600여 개의 도자기 공장이 여주 도자기 생산을 주도하고 있다.

중암리가마터 출토<br />백자 해무리굽완
오금리 도자기<br />공동작업장 전경(1930년대)
도자기 만들기 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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