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시 문화관광

남한강 따라 흐르는 역사의 현장. 조상의 얼을 가까이 느끼고 전통문화를 배울 수 있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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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정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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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유남 선생묘

지정번호 향토유적 제3호
지정일 1986. 4. 10.
시대 조선시대
소재지 북내면 장암리 348-1
소개 원유남(1561~1631)은 인조대의 무신으로 본관은 원주, 자는 관보(寬甫)이며 충장공 원호의 아들이다. 1583년(선조 16) 무과에 이어 1586년 무과중시에도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권율(權慄, 1537~1599)의 휘하에서 공을 세우고 1596년 강원·충청 등의 조방장(助防將)을 지냈다. 또 이듬해 정유왜란이 일어나자 분의복수군(奮義復讐軍)의 장령(將領)으로 활약하였다. 1623년(인조 1) 인조반정에 가담하여 정사공신(靖社功臣) 3등에 녹훈되고 원계군(原溪君)에 봉해졌다. 1624년 이괄의 난이 일어나자, 유도대장(留都大將)이 되어 윤방(尹昉, 1563~1640)과 더불어 도성을 방어하였다. 시호는 충숙(忠肅)이다.

묘는 장암리 아랫말의 소산사(蘇山祠) 뒤쪽에 위치한 원주원씨세장지 내에 위치한다. 묘역에는 혼유석, 상석, 향로석, 망주석의 옛 석물이 간소하게 갖추어져 있다. 향로석에는 당초문(唐草紋)과 운족(雲足)을 조각하고, 망주석의 상단에는 운각(雲角)과 염우(廉隅)를 장식하였다. 봉분 앞에 방부개석 양식의 묘표가 건립되어 있다. 백대리석 비신의 위쪽 폭이 아래쪽보다 넓어 시각적으로 안정감을 주고 있다. 팔작지붕의 개석과 복련이 새겨진 방부는 화강암으로 조성하였다. 비신의 앞면에 큰 해서로 “유명조선(有明朝鮮) 정사공신(靖社功臣) 정헌대부(正憲大夫)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원계군(原溪君) 증우의정(贈右議政) 시충숙(諡忠肅) 원공휘유남묘(元公諱裕男墓) 정경부인(貞敬夫人) 상당한씨(上黨韓氏) 부전(祔前)”이라고 하여 피장자의 신원을 밝히고 있다. 묘표음기는 비신의 뒷면과 좌측면에만 각자하였으나 표제와 찬서자는 기록하지 않았다.
명부전과 조사당 사이 서편 언덕에는 주인을 알 수 없는 두 기의 석조부도(石造浮屠) 중 원구형 부도이다. 이 원구형 탑신(塔身)의 부도는 간략하고 폭이 좁은 기단, 도식적인 연화문 등 조선후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연주문 받침 위에 보주를 두른 삼단형으로 구성된 상륜부가 있다. 상륜부 아래 지붕에는 연잎을 얹어 표현하였다.

기와골은 선명하게 나타내고 4개는 번갈아가며 용머리를 표현하였다. 사각의 지대석 위에 중대석과 상대석을 마련한 기단부는 조각이 둔중하다. 편평한 상대석 위에는 형식적인 연꽃을 모각하였다. 팔각의 중대석에는 2단으로 나누어 연주문형 기둥을 마련하였다.
찾아오시는 길
 

여주 IC를 기준으로 설명합니다.
1. 여주 IC 삼거리에서 여주 방면으로 우측방향(37번 국도) 4.12km
2. 버스터미널사거리에서 북내, 신륵사 방면으로 우측방향(여양로) 2.00km
3. 신륵사사거리에서 북내, 신륵사 방면으로 우측방향(신륵로) 2.14km
4. 천송삼거리에서 양동, 북내, 고달사지, 도립여주노인병원 방면으로 좌회전(여양2로) 4.99km
5. 석우리, 장암리 방면으로 우회전(선돌로) 1.30km
6. 좌회전하여(장산길) 36m

자료제공
문화관광과 : 황양희 031-887-3566 최종수정일 : 2016-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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