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시 문화관광

남한강 따라 흐르는 역사의 현장. 조상의 얼을 가까이 느끼고 전통문화를 배울 수 있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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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정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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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정중 선생묘

지정번호 향토유적 제4호
지정일 1986. 4. 10.
시대 조선시대
소재지 여주시 상거동 산 21-8
소개 민정중(1628~1692)은 숙종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여흥, 자는 대수(大受), 호는 노봉(老峰)이다. 강원도관찰사를 지낸 민광훈(閔光勳, 1595~1659)의 아들이며 숙종(肅宗)의 계비(繼妃)인 인현왕후(仁顯王后)의 백부(伯父)이자 이조판서를 역임한 눌옹(訥翁) 이광정(李光庭, 1552~1627)의 외손(外孫)이다. 1649년(인조 27) 정시문과(庭試文科)에 장원급제하여 전적(典籍)과 정언(正言) 등을 지냈으며 이후 대사간(大司諫)을 거쳐 각조의 판서를 역임하였다.

1675년(숙종 1) 남인(南人)이 집권하자 장흥부(長興府)에 유배되었다가 1680년(숙종 6) 경신대출척(庚申大黜陟)으로 서인(西人)이 재집권하자 좌의정에 임명되어 중앙 정계에 화려하게 복귀하였다. 서인의 중심인물로 크게 활약하였으나 1689년(숙종 15)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다시 서인이 남인에게 축출되자 벽동(碧潼)에 안치(安置)되었다가 죽었다. 사후 복관(復官)되어 효종(孝宗)의 묘정(廟廷)에 배향되었으며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묘는 상거리 민노봉의 남쪽 구릉에 자리 잡고 있다. 묘역은 원형대로 잘 보전되어 있으며 혼유석, 상석, 고석, 향로석, 망주석, 문인석, 배설석의 옛 석물이 갖추어져 있다. 특히 봉분에 팔각형의 호석(護石)이 설치된 것이 주목된다. 금관조복(金冠朝服)을 착용한 문인석은 신체 비례가 균형을 이루고 있으며 조각도 매우 사실적이다. 그리고 고석(鼓石)에는 나어두(羅魚頭)를, 향로석(香爐石)에는 운족(雲足)을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배설석은 후손들이 제사 지내기 위해서 가져온 음식이나 그릇들을 펼쳐 놓는 석물이다. 봉분 좌측에는 방부개석 양식의 묘표가 건립되어 있다. 비신의 앞면에 단정(端正)하게 쓰인 글씨를 통해서, 민정중과 두 부인이 합장되었음을 알 수 있다. 묘역 입구에는 방부개석 양식의 신도비가 위풍당당하게 서 있다. 비석 받침인 방부에는 화문(花紋)과 안상(眼象) 그리고 복련(覆蓮)을 장식해 놓았다. 민정중 묘와 신도비는 지금까지 원형대로 잘 보전되었고 상태도 매우 양호하다. 민정중의 신분이 인현왕후의 백부이자 좌의정을 역임한 인물임을 감안할 때, 본 유적은 조선시대 묘제(墓制)와 석조미술사(石造美術史)의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찾아오시는 길
 

여주 IC를 기준으로 설명합니다.
1. 여주 IC 삼거리에서 여주 방면으로 우측방향(37번 국도) 228m
2. 점봉교차로에서 이완장군묘, 여주유통단지(프리미엄아울렛) 방면으로 좌회전 1.74km
3. 상거교차로에서 좌측방향(명품로) 49m
4. 상거교차로에서 이완장군묘, 하거리 방면으로 좌회전(북벌로) 358m
5. 좌회전하여 671m

자료제공
문화예술과 : 최희정 031-887-3566 최종수정일 : 2019-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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